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2014 소치 동계올림픽/한국 대표팀 (문단 편집) === 왜 남자 쇼트트랙 대표팀이 부진했는가? === [[2002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에서 빈 손으로 돌아간 건 [[제임스 휴이시|한 심판의 오심]] 때문에 정상참작 사유가 있지만 이번의 사태는 더도 덜도 없이 실력에서 밀린 것이고 그동안 문제가 되었던 [[대한빙상경기연맹]]의 파벌 문제가 두드러지게 드러난 사상 초유의 사태라고 볼 수 있다.[* 다만 소치 대표팀 내에 파벌 문제가 있던 것은 아니고 2000년대 중반의 파벌 문제가 끌어올려진 것.] 사실 성적만 봐서는 남자 대표팀이 빈손으로 그칠 실력은 아니었다고 보일 수도 있고, 언론에서도 [[신다운]]은 2013년 세계선수권 1위를 차지한 선수, 이한빈은 당시 1500m 랭킹 1위, 박세영은 500m-1000m 신예라고 잘 포장해주기도 했다. 하지만 실력면에서 부족했던 건 안타깝지만 사실이다. 신다운만 봐도 당시 2013 세계선수권 우승으로 자동 선발이 되었기는 하였지만, 운이 상당히 많이 따라줬다는 평이 많았고, 실제로도 아직 정상급 선수로 보기는 이른 시기였다. 더군다나 같이 함께 경기를 뛰던 선수들이 그당시 남자부 최강자들이라고 평가받던 [[곽윤기]]와 [[노진규]]였기때문에 신다운이 득을 볼때가 많았다. 하지만 자신을 잘 잡아주던 이 둘이 다음 시즌 대표팀에서 아웃되면서 흔들리기 시작했고, 급기야 월드컵에서는 1000m와 500m 티켓을 날려먹는데 크게 일조했다. [[이한빈]]은 무늬만 1500m 세계랭킹 1위였지, 사실 [[캐나다]]의 [[샤를 아믈랭]]과 상대도 되지 않을 실력이었다. 박세영은 세계 무대에서의 경험이 주니어 세계선수권을 빼면 전무했고, 기량 또한 한국대표로 개인전을 뛸 멤버로는 적합하지 않았었다. 이전부터 선수들의 퍼포먼스를 보아온 팬들은 대회 시작 전부터 역대 남자 쇼트트랙 대표팀 최약체라고 평가했다. 대표팀 내부에서도 목표를 금메달 1개로 잡을 정도로 전력 약화를 잘 인식하고 있었다. 물론 운이 없었던 점도 있는데, 1500m 준결승에서 1위로 달리던 신다운이 넘어져 이한빈까지 같이 넘어진 것을 시작으로 계주 준결승 실격, 500m 준준결승 박세영 실격 등 유독 실격이 많았다. 하지만 이 실격들도 실력 부족으로 과도한 몸싸움을 시도하거나 멘탈이 흔들려 예민하게 반응하여 당한 것도 많기에 자업자득이다. 많은 팬들이 역대 최약체라고 예상했음에도 올림픽 결과에 충격을 받고 강도 높은 비판을 가한 이유가 단순히 운으로만 치부할 수 없었기때문이다. 노골드까지는 예상했어도 노메달은 너무나도 충격적인 결과였으며, 그 결과가 도출되기까지 보여준 내용들도 너무 좋지 않았다. 사실 쇼트트랙 소치 쇼크의 가장 큰 원인은 팀의 핵심이 되어줘야 했을 [[노진규]]와 [[곽윤기]]가 암투병과 부상으로 대표팀에서 이탈했기 때문이다. 특유의 스피드와 절정에 달한 테크닉으로 1000m 최강 반열에 올랐으며 계주에서 톡톡히 활약해준 곽윤기가 1213시즌 막바지에 부상으로 이탈하고 폼을 되찾지 못했다. 여기까지는 그렇다쳐도 1500m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실력자였으며, 1000m에서도 준수한 기량을 보여주며 에이스 역할을 물려받은 노진규마저 부상 이탈하더니 사실 암때문에 몸상태가 완전히 망가졌었다는 것이 밝혀지자 많은 팬들이 충격에 휩싸였다. 대표팀의 에이스였던 이 둘이 이번 올림픽에 참가하지 못했고 경험이 부족한 신예 선수들로 채워지면서 남자 대표팀이 부진했던 것이다. 다만 30줄에 접어든 선수들도 제 기량을 유지하며 메달 경쟁을 하는 [[미국]]이나 캐나다, 러시아[* [[샤를 아믈랭]]만 해도 안현수보다 1살 많으며 1000m에서 은메달을 딴 러시아 선수도 한국 나이 30줄이다.]와는 달리 [[이호석]]이나 [[김동성]], [[성시백]], [[진선유]] 등 많은 선수들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20대 중반만 넘어가도 기량이 쇠락하고 불의의 부상 한 번 당하는 날에는 커리어 자체가 흔들리는 미비한 지원 실태와 인프라는 제대로 된 개선 의지를 보이지 않는 [[대한빙상경기연맹|빙상연맹]]의 책임이 크며 쇼트트랙 육성 정책이 어린 선수 위주로 밀어주기를 하는 탓에 나이 든 선수들이 안현수처럼 충분히 재기할 수 있음에도 그냥 방치되는 문제도 심각하다. 즉, 이번 대표팀의 부진을 [[파벌]]만 척결되면 해결되는 문제로 생각해서는 안되고 '''국내 쇼트트랙 인프라와 육성 정책, 빙상협회 행정 체제에 관한 재조명이 필요하다'''. 까놓고 말해 어린 선수들 위주로 지원하는 탓에 큰부상 한번은 고사하고 잔부상만으로도 업계 내부에서 퇴물 취급 받기 쉬운 한국 특성상 안현수가 성남시청 해체 안해서 계속 한국에 남았으면 별메달은 고사하고 국대선발 되었을 가능성도 매우 낮다. 당장 김동성과 [[아폴로 안톤 오노]]가 겨우 2살 차이인데 분명 실력으로는 한 수 위인 김동성이 2002년 올림픽과 몬트리올 세계선수권 이후 사실상 선수 생명이 끝나버린 채 연예계도 갔다가 하며 방황하다 2005년에 은퇴한 반면 오노는 2010년까지 메달 따며 스케이트 잘 탔다. 설마 오노가 [[금강불괴(스포츠)|금강불괴]]라 한 번도 안 다쳐서 그랬겠는가? 좀 더 멀리 보면 2002년 올림픽에서 안현수에 밀린 후 부상을 당해 쓸쓸히 사라진 비운의 천재 [[민룡]] 같은 경우도 있다. 민룡도 세계선수권을 평정할 만큼 대단한 선수였으나 안현수가 등장한 후 부상을 당하자 걸레처럼 버려졌다. 그리고 안현수도 비슷하게 흘러간 셈. 한국의 그 좁은 체육계에 학연, 지연으로 인한 이해관계 없는 집단이 어디 있겠으며 단 두 명만 있어도 의견이 갈리는 게 인간인데 파벌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집단이 어디 있겠는가.[* 재정자립도 가장 높고 할 일도 충실히 하고 선수 육성이나 지원도 잘해주는 축협도 현대가를 중심으로 한 여당, GS를 중심으로 한 야당으로 나눌 수 있다... 는 것은 2010년대 이전까지의 얘기. 대한축구협회장 선거 과정에서 GS그룹은 야당을 대표했던 허승표와 선을 그어버렸다. 허승표 자체가 반축협 세력들이 띄운 것과는 달리 문제가 많았던 인물이기도 하다.] 그러나 4대 구기종목은 말할 것도 없고 아무리 어려운 비인기종목도 세계를 통틀어 해당 종목에서 가장 뛰어나다고 인정받은 선수를 한 물 갔다며 해외로 보내버리진 않는다. 귀화야 어디까지나 본인의 선택이니 미화할 필요는 없지만 그 지경이 이르도록 방치한 것은 엄연히 빙상연맹의 책임이다. 더욱 근본적으로는 '사실 메달을 많이 따기 어려운 나라'에서 '애국심'을 위해 메달 따기용 공무원을 육성하는 시스템 자체에 문제라는 평도 있다. 자생할 수 없는 양궁, 쇼트트랙 같은 종목을 오로지 올림픽 하나만 바라보고서 한국 시민들의 필요 이상으로 육성하기에 나온 문제고, 빅토르 안이 1000m에서 금메달을 딴 직후에 [[대한빙상경기연맹]]이 큰 비난을 받은 것도 '금메달 지상주의' 때문이라는 것. [[http://www.mediaus.co.kr/news/articleView.html?idxno=31703|링크 1]], [[http://www.hani.co.kr/arti/sports/sports_general/625950.html?_fr=sr21|링크 2]]. 그렇다고 한국이 [[중국]]처럼 엘리트 체육인들에게도 시장이 충분하게 될 수 있는 대국도 아니다. 그러니 조금만 삐끗하면 나라가 지원을 끊고 그렇게 되면 선수가 사회에서 받을 수 있는 지원이 사라져 버리는 것이다. [[축구]], [[야구]] 등과는 달리 나라가 올림픽 상비군으로 편입시켜주지 않으면 사실상 선수 생명을 유지할 수 없는 소규모 종목 선수들의 비극이 건국 이래 드라마틱하게 나온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다만 쇼트트랙은 감독이나 연맹이 권한을 갖고 선수를 차출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대표 선발전을 치러 순위대로 선발이 되고 출전권 역시 순위대로 배분된다. 안현수 역시 부상 당한 이후로 선발전 순위 안에 들지 못해서 탈락한 것이지 파벌이나 다른 이유로 인해 탈락한 것은 아니다.] 사실 이런 일은 쇼트트랙, 마라톤 등등 많은 비인기 종목 특급 선수들 사이에서 비일비재했을 것이다. 빅토르 안처럼 드라마틱하지 않았을 뿐. 양궁은 비교적 이런 일이 적지만 국가대표 선발전이 올림픽 결승보다 어려워서 선수들은 더 힘들다. 다른 나라로 귀화한 양궁 선수로는 [[호주]] 양궁 국가대표로 활약한 스카이 김(김하늘)과 [[일본]] 양궁 국가대표로 활약한 하야카와 나미(엄혜랑), 하야카와 렌(엄혜련) 등이 있다. 스카이 김의 경우 올림픽 출전을 위해 상대적으로 경쟁이 덜한 국가로 귀화한 케이스이며, 하야카와 자매의 경우 딱히 올림픽 출전을 염두에 둔 것은 아니고 어머니의 재혼을 계기로 이민 후 자연스럽게 귀화를 한 케이스다. 4년, 아니 2년마다 반복되는 올림픽 금메달 애국 열풍과 그 이후의 [[비인기 종목]]에 대한 무관심이 만든 비극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한 번쯤 해봄직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